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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잠&독자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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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답고 정겨운 교복 나눔행사
    아름답고 정겨운 교복 나눔행사
    제463호(2019.2.27.)  남학생들은 하얀 플라스틱 칼라에 단정하게 채운 호크와 단추와 날이 선 바지, 여 학생들은 검정색 세라복에 검정색 코트. 이는 1970년대 학생 교복의 전형이었다. 남 학생들은 가끔 모자를 삐딱하게 쓰거나, 여학생들 역시 운동화 뒷굽을 구겨 신기도 했지만 학창시절의 멋이려니 하고 선생님들은 귀엽게 봐주곤 했다. 질풍노도의 시 절엔 누구나 그렇듯 감정의 기복이 심하게 일 때 교복을 입으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파릇파릇한 소년, 소녀가 장래의 꿈을 꿀 때도 교복은 항상 옆에 걸려 있었 다. 공부 잘하는 선배의 교복을 물려받고 그 옷만 입으면 왠지 공부를 잘할 것 같은 뿌듯함이 있었다. 그게 우리 70년대와 80년대 초반까지 중고등학교를 다닌 기성세 대의 모습이었다. 그러던 시절이 지나 교복 자율화가 이뤄졌고, 그것이 사복으로 바 뀌면서 적잖은 부작용을 일으키자 이제 다시 교복으로 돌아왔다. 2월 23일에 안산 시청 별관에서 ‘중·고등학교 교복 나눔 축제’가 열렸다. 우리 안산시 지역 중·고등 학교 졸업생의 교복을 기증받아 유상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어려운 학생들에게 지 원하는 방식이란다. 안산시에서 주관해 예전에는 교복 물려주기도 했었다. 아름답 고 정겨운 행사였다. 어차피 얻어 입히지 않는 한 새로 구입하려면 적잖은 돈이 들 어갈 수밖에 없기에 학부모들의 이런 고민을 덜어줄 방법은 교복 물려주기가 아닐 까 싶다. 필자도 지금은 다 큰 딸 둘의 교복을 대물림해서 입혔다. 아이들은 선배 언 니들이 입었던 교복을 나눔으로 얻어 입고 알찬 학창시절을 보냈다. 교복 물려주기 나 이번에 안산시에서 실시하는 교복 나눔 축제나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고 선· 후배 사이의 정서적 유대감을 형 성하는 하나의 촉매제가 된다는 점에서 어느 모로 보나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생각한다.•심희수(단원구 초지동) 
    2019-02-27
  • 지역서점 바로대출제
    지역서점 바로대출제
    제463호(2019.2.27.)  고등학교 때 만난 불어 선생님은 아침에 등교하 면서 서점에 들러 책 2권을 구입해서 하루를 지내는 동 안 틈틈이 그 책을 다 읽으신다고 했다. 시인이기도 하시면서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최고가 되라고 말씀하셨던 분이기도 하다. 그분의 언행일치와 따뜻함 덕분인지 그분을 닮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것이 책읽기였다.가끔씩 카페나 도서관에서 차 한 잔과 노트, 볼펜 그리고 책 한권을 갖고 여유를 부리고 낭만을 누릴 때가 있다. 새 책이 좋아서 도서관 신간코너에서 이런저런 책을 고르기도 했었는데 몇 년 전부터 지역서점 바로 대출이라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따 끈따끈한 신간을 서점에서 직접 대출하고 도서관 도장이 찍히지 않은 새 책을 읽고 반납할 수 있게 되었다.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줄 알고 관망만 했었는데, 시도 해 보니 설레이도록 좋았다. 살림하면서 자녀들을 양육하다보니 새 책을 산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종 이 냄새 맡으며 빳빳한 책장을 넘기며 읽는 느낌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때는 잘 느낄 수 없었다. 지역서점 바로 대출 덕분에 가족과 함께 서점 나들이도 하고 서점 에서 차도 마시며 호사도 누리고 이 시대에 어떤 책들이 나오는지 구경도 할 수 있 게 되었다. 한 달에 5권이나 새 책을 신청해서 읽을 수 있으니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 이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40대 중반의 삶을 지나며 책은 나를 다독여주고 생각의 틀을 넓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자녀양육의 지혜나 인간관계의 팁 등을 책속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책과 산뜻하게 첫 만남을 새롭 게 가질 수 있도록 해 주는 지역서점 바로대출 서비스는 삶에 윤활류가 되고 활력 소가 된다. 다섯 권의 책이 서점에 도착했다는 알림을 받고 서점을 향해가는 마음이 콩탁콩탁 거리며 좋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 같고, 한 아름 책을 들고 집에 오는 내 내 큰 선물을 안고 오는 것 같아 행복해진다. 작지 않지만 나에게 지역서점 바로대 출 서비스는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된다.  •이옥자(단원구 고잔동) 
    2019-02-27
  •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난 사람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난 사람들
    제463호(2019.2.27.)  ​결혼하기 전 지금의 남편과 함께 강원도에 위치한 워터파크에 놀러간 적이 있다. 버스를 내리자마자 수많은 인파에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놀 수 있을 정도로 큰가 싶기도 하고, 이렇게 많은 인원이 오는 곳을 나는 처음 와보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했다. 조금 큰 수영장 정도로 생각한 내 스스로가 좀 민망했다.입장 후,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로 향했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야~ ㅇㅇ야!”라고 소리치며 누군가에게 다가갔다. 알고보고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인데 우연치 않게 그것에서 마주친 것이다. 5천만 인구가 사는 한국인데, 이런 우연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며 친구 내외와 함께 재미있게 놀다가 왔다.결혼 후, 아이가 없을 때 조금이라도 더 돌아다녀야 한다며 매년 한 번 씩은 해외여행을 다니고 있다. 한번은 패키지로 보라카이를 간적이 있는데 안산에 사는 신혼부부를 만났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안산에 산다고 하니 어찌나 반갑고 신기하던지. 패키지에 참여한 인원이 몇 이나 된다고 그중에 안산 사람이 4명이나 될까 싶었다.최근엔 자유여행으로 스페인을 다녀왔다. 곧 아이를 가질 예정이라서 큰 마음먹고 간 유럽여행이었다. 머나먼 땅에서 종종 들리는 한국말이 반갑기도 하며, 한국인들이 참 여기저기 많이도 여행 다니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한 관광지에서 들리는 한국어에 고개를 돌려보니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누구더라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고등학교 친구였다. 지금은 연락하고 있지 않았지만 한때는 매우 친했던 친구가 남편과 함께 그곳에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야~ ㅇㅇ야!”라고 소리쳤다. 좁은 안산에서도 10년 넘게 한번을 안 마주쳤는데 이 먼곳에서 만났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이 먼 스페인에서, 안산사람을!! 그것도 친구를 볼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나는 타지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문득 헤어지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안산에서 친구를 마주쳤더라도 이렇게 기뻤을까?’아니. 아닐 것이다. 안산에서 그동안 우연히 보게 된 옛 친구(동창)를 외면한 적이 몇 번이었던가…. 아마 이 친구도 안산에서 만났다면 난 외면해버렸을지도 모른다. 타지에서 생각치도 못한 친구를 만났기에 더 반갑고 나도 모르게 아는 척을 했던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친구를 봤을 때처럼 기쁨 마음으로 사람을 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들었다. •한혜진(상록구 반월동)​ 
    2019-02-27
  • 문화예술 도시 안산, 꼭 안아주고 싶다
    문화예술 도시 안산, 꼭 안아주고 싶다
    제462호(2019.1.30.) ​종종 예술의 전당에 간다.문화와 예술을 잘 모르지만 안산시립합창단의 공연을 보면 전율을 느끼며 평안함과 황홀함을 경험하게 된다. 좀 어려운 클래식이 울려 퍼질 때는 뭔지 잘 몰라서 졸리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을 어루만지는 음악의 위대함과 흥을 맛볼 수 있게 된다. 1년에 몇 번 저렴한 가격으로 훌륭한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 좋다. 계절의 변화를 터치해 주는 음악을 안산에서 맛보고 누릴 수 있어 감사하다.도서관이나 문화광장 등에서 합창이나 중창으로 울려 퍼지는 천상의 목소리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주는 빛과는 다른 밝음을 선사해준다. 뜻밖의 장소에서 음악으로 다가온 선물은 일상에 활력을 주고 에너지가 된다. 특정한 장소만이 아닌 삶의 길목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안산의 노래는 마음의 노래가 된다.몇 년 전, 도서관에서 안산시립국악단의 연주를 들었다. 국악은 지루하고 어려운 줄만 알았는데, 국악기로 연주되는 귀에 익숙한 음악을 들으며, 국악이 또 다른 악기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다양한 시도와 도전으로 누군가 해왔던 음악이 아니라 창조의 길을 내딛는 안산시립국악단의 연주를 들으며 어떤 가야금 연주자의 팬이 되기도 한다. 여러번 가니 항상 그 자리에서 연주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먼발치에서 예술가를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국악의 끈을 갖고 있는 것이 감사하다. 안산시립합창단과 더불어 안산시립국악단이 있어, 역시 안산이 예술의 도시라는 것을 느끼며 뿌듯해진다. 신혼집 마련을 위해 안산에 둥지를 튼 후 안산시민으로 10년을 넘게 살면서, 이제 인생의 마지막까지 안산에서 살 것을 당연시 하고 있다.문화예술의 도시 안산에서 거리를 지날 때도 크리스마스의 불빛을 볼 수 있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 차가운 계절이라 그런지 크리스마스트리의 반짝임이 훈훈하게 가슴속까지 다가온다. 거리의 아름다움. 문화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다양한 음악소리와 행사들이 안산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 같다.멀리가지 않아도, 특별히 발걸음을 정하지 않아도 삶의 길목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어서 감사하다. 문화예술도시 안산을 사랑하고 꼭 안아주고 싶어진다. •김주한​ 
    2019-01-30
  • 모녀사이…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맛집 탐방이라도”
    모녀사이…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맛집 탐방이라도”
     ​병원에 가면 한없이 작아진다. 특히 치과에 가면 더 그렇다. 5년 전에 크라운을 씌운 어금니가 며칠 전부터 아파서 참다못해 치과로 출동했다. 씌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이 모양이냐고 실컷 따져야겠다는 다짐도 잠시,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를 보자마자 나는 절로 공손해졌다. 잇몸 염증이 심해졌다면서 아예 발치를 하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단다. 임플란트라니! 내 나이 아직 마흔도 안됐는데 임플란트라니!! 아직 우리 엄마, 아빠도 안 한 임플란트를 내가 먼저 첫 타자로 하게 된 것이다.그러고 보니, 10년 전쯤 엄마와 함께 치과에 간 적이 있다. 산부인과나 다른 병원에는 많이 모시고 가보았지만 치과는 처음이었다. 엄마가 워낙 꺼려했기 때문이다. 치료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자신의 못난 치아를 남에게 보이기 싫어하셨다.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자신의 치아 상태를 숨기셔서 나도 취업한 뒤에야 엄마의 치아 상태를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턱관절 통증이 있어 교정을 해야 했다. 내가 치아 교정을 한다는 말을 듣고 엄마는 지나가는 소리로 “나는 어금니도 없는데……”라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뭐? 어금니가 없다고? 어디 한번 봐봐.”라고 채근하니 엄마는 한참을 손사래를 치다 겨우 입안을 보여주셨다. 그때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엄마가 부끄러워하신다는 것을 알기에 티내지는 않았다. 대신 엄마를 설득해 근처 치과에 모시고 갔던 것이다. “엄마의 어금니들은 정확히 이야기하면 썩은 것이 아니라 마모된 것”이라는 의사의 설명이었다. 전적으로 나 때문이었다. 나를 임신했을 때 입덧이 심해 거의 음식을 못 드셨고, 유일하게 드실 수 있었던 음식이 바로 생쌀이었다. 흰죽도, 미음도 아닌 생쌀. 굶을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생쌀 섭취는 엄마의 어금니를 조금씩, 조금씩 부수어 놓았다. 돈 한 푼이 아까웠던 시절이었기에 변변한 치과 진료도 받지 못한 채 이십년이넘는 세월을 보낸 것이다. 나를 포함한 가족누구도 엄마의 이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엄마가 직접 입 안을 보여주기전까지는. 다만, 엄마가 다른 사람들보다 음식을 조금 늦게 먹는 편이고 자주 소화불량 또는 원인 모를 복통에시달린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엄마의 어금니 치료비는 생각보다 많이 나와 당시 내 두 달치 월급을 고스란히 내야했다. 엄마는 나한테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당시 한 집에 살았는데도 굳이 나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내어 고맙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내가 엄마한테 해준 것 중에 제일 잘 한 일은 바로 엄마의 어금니 치료비를 대준 것이다. 자랑하고 싶을 만큼 뿌듯한 일이다. 엄마는 누구보다 깔끔하고 치아 관리를 잘하시기 때문에 그 뒤로는 치과 치료를 하신 적이 없다. 그때 치료받은 어금니가 여전히 짱짱하게 잘 버텨주고 있기 때문이다.이제는 내가 임플란트를 하게 되었다. 사정을 엄마에게 말씀드리니 너무 안타까워하며 “안 할 수 없냐”고 거듭 확인하셨다. 자신의 딸이 벌써 이렇게 나이가 들었나 놀라며 걱정하시는 것 같다. 이럴 때면 나이 들어가는 것이 어쩔 수 없다 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서글프게 느껴진다. 마음이 또 조급해 진다. 나도, 엄마도 더 나이 들기 전에 경치 좋은데 한 번 더 가보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어봐야 하는데……. 이 겨울이 가기 전에 엄마랑 근처 맛집이라도 탐방하고 와야겠다. •김혜영​ 
    2019-01-30
  • 입대한 아들, 진정한 애국자
    입대한 아들, 진정한 애국자
    ​  “이번 아빠 생신에는 축하 절을 못 드려서 아쉽네요. 이 편지에다 절하면 용돈 두둑하게 주실 거죠?” 마지막 5주차 훈련을 남겨 놓은 군대 간 아들의 편지 일부분이다. 기특하다. 군대에서 제 애비생신 챙길 줄도 알고. “사회에서는 먹지도 않던 건빵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 되어 버렸네요. 엄마 아빠, 건빵이 너무 맛있어요. 별사탕도 맛있고….” 입영 후, 첫 번째 편지에 이렇게 써 가족들의 눈에서 눈물을 쏙 빼게 하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농담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어 보인다. 훈련소에 가던 날, 그나마 하나 있는 아들 군대에 보내고 돌아왔더니 집안에 찬바람이 휭 돌았다. 든 자리는 표시가 안 나도 난 자리는 표시가 난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꼈다. 하나 남은 딸내미마저 제 방으로 들어가면 그야말로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 길을 가다 보면 군복 입은 군인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고 텔레비전을 보다 군인만 나와도 울컥했다. 요즘은 좋아져 인터넷에 훈련소 전용 카페를 신설해 놓고 있다. 편지도 카페에 올리면 매일매일 출력하여 훈련병들에게 전달해 준다. 카페에 올라온 편지들을 읽다 보면 부모의 마음은 한결같다는 것을 느낀다. 걱정과 근심으로 가슴을 죄고 있다. 예전에는 몇 대 독자 이상이면 군대를 면제해 주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독자가 아닌 아이가 드문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는 부모대로 애잔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다. 더불어, 강인한 군인을 만들어야 하는 훈련소의 역할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닐 것이다. “저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만큼 사랑으로 자식처럼 보살피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훈련소에 입소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보내온 부대장의 편지 내용이다. 군에서도 부모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해당 부대의 부대장을 여성으로 배려한 것 같다. 정말 그 편지를 읽다보니 적이 안심이 되는 것을 보면 그 효과가 그만이다. 보고 싶다 아들. 그러나 당장 못 보는 아들이 자랑스럽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군인이니까. “아들아, 네가 바로 진정한 애국자다. 건강하고 성실하게 복무하거라.  •권순도​
    2019-01-30
  • 안전 비상벨, 정말 좋은 정책입니다
    안전 비상벨, 정말 좋은 정책입니다
    ​안산시가 비명을 감지해 경찰에 신고하는 자동형 비상벨을 공중 화장실에 추가 설치한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들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여건이 안 돼 비상벨을 누르지 못해도 비명만으로 112상황실과 연결되는 기능을 갖췄다고 한다.시내 공원 안에 있는 공중화장실 30개소에 이 비상벨을 설치할 예정이라고 하니 여성으로서, 그리고 딸을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아주 좋은 아이디어이고 발 빠른 행정이라는 생각이다.지난해 내가 겪은 경험담이다. 지방의 모 소도시에 출장을 간적 있었다.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마침 용변이 급해 도로가 가까운 곳 공원 공용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날 저녁 약간 어스름한 시간이었던 탓에 공원에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간간히 운동하는 사람들만 눈에 띄었을 뿐이었다. 용변을 마친 후 문을 열고 나왔는데…, 화장실 문 앞에 웬 남자 한명이 떡 버티고 서서 나를 노려보는 게 아닌가. 얼마나 소스라치게 놀랐는지 모른다. 그는 나에게 “라면 값 좀 달라”고 손을 벌렸다. 너무나 겁이 나서 지갑을 열어 손에 잡히는 대로 건네주고 ‘걸음아 나 살려라’ 후다닥 뛰쳐나왔는데, 돈을 얼마나 주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났다. 차로 돌아와 문을 잠그고 정신을 차린 후 지갑을 열어 보니 5만 원짜리를 건네준 것 같아 너무나 아까웠다. 그 상황 자체가 너무 싫었고 소름 돋도록 겁이 났다. 또한 그 노숙자가 이성을 잃고 엉뚱한 행동을 했다면? 정말 상상도 하기 싫다. 하지만 내가 사는 우리 안산시에는 이런 비상벨을 설치한다니 정말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외적으로도 안산은 안전한 도시라는 이미지가 커질 것 같다.지난해 그 당시 만약 화장실 안에 이런 벨이 있었다면 노숙자가 감히 나타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설사 그랬다 해도 나는 벨을 누르고 경찰의 도움을 받아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이건 꼭 필요한 장치라는 생각이다. 안전한 도시 안산을 응원한다.  •민경화​
    2019-01-30
  • 투고 내 인생의 마지막 봉사
    투고 내 인생의 마지막 봉사
     ​사십여 년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우연히 알게 된 한국국학진흥원의 ‘이야기할머니’가 어쩌면 내 인생의 마지막 전환점이자 재능기부라는 작은 봉사활동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이야기 할머니’가 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일주일에 세 번 찾아가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아이들. 그들의 환한 동심과의 만남이 이토록 행복할 줄이야. 이 느낌을 알기까지 7년이나 지났고, 어느새 칠순을 준비하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내 모습에 가끔은 놀라기도 한다.‘이야기할머니’를 처음 한다고 했을 때 펄쩍 뛰던 남편과 딸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남편은 “그 동안 직장생활 하느라 고생 많이 했으니 이제는 집에서 손주나 보며 편히 쉬라”며 배려했지만, 이웃에 살면서 맞벌이로 직장에 다니는 딸은 생각은 좀 다른 듯했다. 걱정스런 마음이야 아빠와 같았겠지만, “연년생인 외손자 치다꺼리는 어떡하라고…” 하는 푸념 속엔 자식 걱정하는 어미의 깊은 뜻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가하면 퇴직 동기들과 친구들 역시 만날 때마다 첫마디가 “미쳤어, 미쳤어!”였다. 가만히생각해보면 모두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고마운 말들인데 어쩌랴. 그래도 “이 나이에 뭔가를 누군가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현실이 얼마나 은혜로운지 모르겠다”는 내 진심어린 말에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던 내 친구들의 마음도 마냥 고마울 뿐이다.“안녕, 만나서 반가워. 나는 여러분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온 이야기 할머니란다.” 첫 인사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야기 할머니가 뭐예요? 몇 살 이예요? 무슨 이야기인데요?”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야단법석이던 그 아이들이, 이제 방학이 되거나 한 해가 끝날 무렵이 되면 내 옷자락을 붙잡고 그렇게 서운해 하면서 “할머니 그 호랑이는 어떻게 됐어요?” “주인공 장수는 죽었나요?”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죠?” 하며 이야기 속에 푹 빠져 아기배나무처럼 여물어간다. ‘바로 이런 것들이 교육의 힘이구나’ 고맙고 대견스럽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라는 생텍쥐페리 ‘어린왕자’의 한 대목이 더 살갑게 느껴진다.일주일에 세 번 출근하는 날이면 덩달아 바빠지는 우리 신랑, 남자가 부엌에 가면 무슨 큰일이라도 생기는 줄 알던 그가 손수 밥상도 차려주고 굳이 운전기사를 자청하기도 한다.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다. “원고를 외우는 것이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격려해주던 남편의 그 따뜻한 속마음을 모를 리 없는 나이기에, 오늘에서야 비로소 ‘당신이 있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내 속마음도 전하고 싶어지는 기해년 새 아침이다. •곽필순​ 
    2019-01-30
  • (나비잠) 우리 아이가 태어났어요 : 꽈까기 아기
    (나비잠) 우리 아이가 태어났어요 : 꽈까기 아기
    제461호(2018.12.19.)  ○ ​아기이름: 미정 ○ ​출생년월: 2018. 12. 5. ○ ​태명: 꽈까기○ ​태몽: 외할머니가 커다란 황금똥을 받는 꿈​ ​꽈까기는 이제 막 신혼생활을 시작한 저희에게 생각보다 좀 빨리 찾아온 아이에요. 성격이 많이 급한 아이인지 예정일보다 한 달 일찍 저희 품으로 왔습니다. 조금 일찍 태어나 혹시 어디가 아프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되었지만 다행히 당당한? 체격의 건강한 아이로 태어났네요.;;알고 보니 예정일을 채우면 엄마가 고생할까봐 미리 나온 효녀였습니다. ㅎㅎ처음에는 부모가 된다는 게 조금 무섭기도 하고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천사같이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면 늦지 않은 나이에 결혼한 저희 부부에게 하늘이 주신 선물 같네요. 아직은 이름도 지어 주지 못했지만 곧 예쁜 이름 지어서 하루에 백번씩 불러줄게~ 앞으로 우리 가족 지금처럼만 행복하자. 
    2018-12-19
  • 겨울이 오면…
    겨울이 오면…
    제461호(2018.12.19.)  ​찬 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치면~ 따스하던~겨울이 오면 어김없이 한번쯤은 속삭이게 되는 추억의 CM송이다. 매서운 찬바람이 불 때,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어느샌가 따뜻한 호빵 한입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나게 된다. 그러다 종종 생각은 옛 추억까지 이른다.김이 모락모락나는 호빵 기계는 어린시절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기계 안에서 몽실몽실 하얀 자태를 뽐내는 호빵은 맛 또한 좋았다. 호빵 기계 앞에 서서 하단에 붙은 종이 껍질을 보면서 단팥호빵 속에 숨어 있는 야채호빵을 찾아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땐 녹색종이 껍질이 붙은 야채호빵이 별미 중에 별미 였다. 친구들과 모여가서 서로 먼저 야채호빵을 찾겠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고, 너무 기계 안에 오래 있어서 쭈글쭈글해진 호빵을 보면서 지금 사먹을까 나중에 다시 와서 새 호빵을 사먹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때론 다 팔려 식어버린 빈통을 보고 서운하기도 했다. 엄마는 호빵을 사줄 때 반으로 쫙 갈라 주면서 한마디를 하셨다.“호~ 불면서 천천히 먹어.”나는 호빵을 받기 무섭게 어머니의 말씀은 까맣게 잊고 허겁지겁 먹다가 입을 데이곤 했다. 그 시절 호빵은 추위를 이기게 해주는 간식이자 놀이였다. 그리고 지금은 추억이 됐다. 요즘 나오는 호빵은 왠지 그때 그 맛을 따라가질 못하는 것 같다.현재 나오는 호빵이 예전과 맛이 다를 리가 없겠지만 옛날 게 더 맛있다고 느껴지는 건 추억이라는 양념이 첨가되서 일까?성인이 되선 호빵을 밖에서 하나씩 사먹기 보단 마트에서 한봉지씩 사서 집에서 먹곤 한다. 단팥, 야채, 피자, 고구마, 에그 등 종류도 참 다양해서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최근에 자주 먹는 대표 야식인 치킨, 피자, 족발 등은 간단하게 먹기에는 조금 과한 느낌있다 싶을 땐 따뜻한 호빵과 시원한 우유 한 잔! 이만한 게 없다!이번 주말 어머니를 찾아 뵙고 뜨끈한 바닥에서 호빵을 간식으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승림​ 
    2018-12-19